
Once in a Blood Moon
크리스탈
오늘은 월식이 있는 날이었다.
월식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연모대 교정을 창밖으로 바라보던 허묵은 가만히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5분 정도 뒤에 교수실을 나서면 유연을 만나게 된다.
벌써 몇 십 번이나 반복한 일이었다. 유연은 월식을 보러 연모대에 올 것이고, 우연히 허묵을 마주칠 것이다. 그리고 허묵은 연구실에서 술을 가져와 월식이 잘 보이는 강의실에서 유연과 함께 마실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눈을 뜨면 일주일 전으로 돌아갈 것이다. 허묵은 연모대에서 강연을 하고, 카페에서 유연을 만나고, 호수에 휴대폰을 빠뜨린다. 그 다음에는 월식을 보고,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 그런 것들이 계속 반복될 것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데자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자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또렷한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렇다면 생생한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은 잠을 자지도 않는데 어떻게 꿈을 꾸겠는가.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점점 더 명확해졌다. 월식이 일주일마다 한 번씩 일어날 리가 없었다. 허묵은 반복되는 시간 속에 갇혀 버린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되풀이되며 일어나는 일을 하나하나 곰곰이 곱씹어 보았지만, 이런 반복을 가져올 만한 트리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은 이 시간 속에 갇혀 버린 것일까? 언제까지 계속되는 것일까? 무언가를 바꾼다면 미래로 갈 수 있는 것일까?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을 하며,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 채 다가오는 유연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눈이 마주치자, 유연의 눈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서렸다. 그리고 허묵은 언제나 같은 말을 한다.
“월식을 보러 학교에 왔어요?”
물론 유연도 언제나 같은 대답을 한다.
“네. 이렇게 늦게까지 학교에 계셨어요?”
“방금 실험 몇 개를 마쳤어요. 학교에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몰랐네요.”
물론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해야 했다. 그것이 정해진 대사였다. 실험 결과 역시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언제나 똑같은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묵은 정해진 대로 자신이 하기로 했던 실험을 수행해야만 했다.
달빛 아래를 걸으며, 허묵은 유연의 손을 잡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유연의 손은 스스럼없이 허묵의 손을 마주잡아주었다. 이제 허묵은 달이 아주 잘 보이는 강의실을 유연에게 보여주고, 함께 교수실에 가서 와인과 와인글라스를 가져올 것이다. 두 번 걸음하지 않도록 와인에 대해 먼저 말해볼까, 하고 잠시 생각했지만 곧 그만두었다. 모든 것은 정확히 그대로여야 하니까.
강의실의 커다란 유리창 한가득 하얀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와인글라스가 달빛에 빛났다. 두 사람은 건배를 하며 글라스를 살짝 부딪쳤다. 허묵은 와인을 마시는 유연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정말 맛있어요!”
“다행이네요.”
허묵은 유연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이고, 자신도 글라스를 입가에 가져갔다. 와인보다 더 먹고 싶은 것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손에 넣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 월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얗게 빛나던 달이 점점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어두워졌다고 생각한 때에 곧 마법처럼 붉게 변해버렸다. 우와, 하고 유연이 탄성을 내뱉었다. 아름다운 핏빛 달이었다.
달을 보던 유연의 시선이 허묵을 향했다. 눈이 마주치자 허묵은 살짝 미소지었다. 유연은 허묵보다도 더 활짝 미소지었다. 허묵은 유연의 뺨을 자신의 손으로 감쌌다. 자연스럽게 유연의 시선이 자신을 향했다. 붉은 달빛을 받아 유연의 눈동자에 자신이 비치고 있었다. 이때는 언제나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허묵의 입술이 유연의 입술에 닿았다. 화사한 와인의 향기가 느껴졌다. 유연의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를 더욱 느끼고 싶었다.
살짝 입술을 떼자 쪽, 하고 아쉬운 소리가 났다. 어느새 유연의 뺨은 붉은 달처럼 빨갛게 상기되어 있었고, 붉은 입술은 벌어져 있었다. 더더욱 바라는 것처럼.
허묵은 사양하지 않고 그 입술에 다시 한 번 입을 맞췄다. 열린 입술 사이로 따뜻하고 말캉한 혀가 얽혔다. 미뢰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깨어났다. 모든 미뢰로, 입 전체로, 온 몸으로 키스의 맛을 느꼈다. 유연에게 배운 맛 중에서 가장 달콤하고, 황홀하고, 잔혹한 맛.
지금만큼은 자신의 어두운 욕망으로 이 빛나는 사람을 물들이는 것이 허락되었다. 지구의 그림자가 달을 물들이는 월식의 밤이니까. 유연의 뺨이, 입술이, 마음이, 허묵의 욕망으로 인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달빛에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색깔이었다.
행복하다, 라고 허묵은 생각했다. 이미 몇 십 번째, 그녀의 맛에 중독되어 버렸다. 또다시 맛보고 싶다. 계속 맛보고 싶다. 이것을 잃고 싶지 않다. 유연이 없는 미래에 나아가고 싶지 않다. 자신이 없는 미래에 유연을 두고 싶지 않다. 다시 일주일 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허묵과 유연이 함께할 수 있는 미래는 없었다.
“블러드 문은 백년에 한 번 보기도 힘들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천년에 한 번 만나기도 힘들어요.”
“뭐라고 하셨어요?”
“오늘 밤의 월식이 정말 아름답다고 했어요.”
“아,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다시는 없을, 천년에 한 번 만나는 인연. 그리고 어쩌면 천년동안 만날 인연.
허묵은 이 영원한 시간의 반복을 중단할 방법을 찾지 않기로 했다.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기로 했다. 이 시간 속에 유연을 자신과 함께 가두기로 했다. 그것이, 유연을 지키는 허묵의 방법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