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에 내리는 눈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녀석, 웃기지도 않는 수작을 부리지. 히지카타가 살포시 입 꼬리를 끌어올리며 미소 지었다. 들에 가득 피어난 꽃송이를 자신이 모르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바삐 밀려오는 사건에 창문을 내다볼 수 있는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벌써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고이 내려놓은 사람들이 두 팔 벌려 꽃을 안아드는 계절이 돌아왔다. 조그마한 꽃봉오리들이 고개를 내밀고, 사랑스러운 새들이 노래를 부르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가 좋아하는 벚꽃이 길가에 분홍빛 비를 내리는 계절이었다.
“그야, 쓸데없는 일이 아니냐. 봄까지 쓸모없는 눈이 내린다면 꽤나 골치 아플 테지. 그걸 치우는 사람도 생각해줘야지.”
슬쩍 흘리는 귀찮다는 뉘앙스에 녀석의 입이 살며시 튀어 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꼭 그렇게까지 상상해야하나? 사람이 어떻게 낭만이라는 게 없어요? 투덜거리는 목소리 너머로 따듯한 봄기운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원한다니 할 수 없네. 그가 물고 있던 담배를 담뱃재떨이에 비벼 끄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그 잘난 눈이라는 것 좀 보러 가볼까.
*
“한 송이 꽃만 피어도 봄이 온 줄을 안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렇게 꽃이 가득한데, 어떻게 꽃놀이를 가겠다는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볼 수가 있어요?”
“임마. 봄이면 꽃만 같이 오는 줄 아냐. 쌓인 일거리들도 같이 몰려온다고. 봄이 되니 다들 꽃놀이를 나가겠지. 꽃놀이에서의 가장 묘미가 뭐냐. 다 같이 둘러앉아 마시는 술 한 잔이 아니냐.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되고 그러다가 결국 일이 커지는 거야.”
그리고 그 일들은 모두 내가 수습해야하고. 히지카타가 품을 뒤적여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매섭게 치켜 올라간 눈이 자신의 입가를 새치름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차마 자신이라고 해도 담뱃불을 붙이겠다 마음먹을 순 없었다. 잠시 제 행동을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제게 가까이 다가와 팔짱을 꼈다.
“한 잔이 두 잔이고, 두 잔이 세 잔이 되는 형편에 혼자 꽃구경 나간 애인이 걱정되지도 않았나 봐요. 으휴, 말은 이렇게 잘해! 누군 다른 애인들 사이에서 홀로 쓸쓸하게 나돌았는데 이 무심한 사람은 서류나 들여다보고 있다니!”
그가 낮게 웃음소리를 내뱉었다. 잔뜩 성이 난 두 볼이 퉁퉁 불어 제 모습을 찾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메구미, 귓가에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그녀가 살며시 그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얄궂지 않나. 저기 저 사람들의 얼굴을 좀 봐라. 미소가 가득하지.”
자신을 향해 의아한 눈빛을 보내는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으며, 그가 계속해 말을 이어 나갔다. 저들도 누군가의 가장이고, 사랑하는 사람이며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일 테다. 저들에게도 자신의 앞에 있는 자들이 내게 있어 네 녀석만큼이나 소중한 사람들이겠지. 저들 중 어느 하나가 다친다면 저 웃음들이 모두 무너져 내릴 게 뻔하다. 그렇기에 진선조가 존재하고 있질 않나. 내가 저들의 미소를 지키고자 함은 곧 내게 있어 너를 지키고자 마음먹은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니 입 집어넣고.
히지카타가 그녀의 손을 살며시 부여잡았다. 조막만한 손에 어찌 그리 많은 고민이 담겼는지. 그녀를 향한 그의 눈길에 살짝 장난이 어렸다. 잠시 그녀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그가 바닥에 수놓듯 벌려진 벚꽃 잎을 한 움큼 집어 들더니, 그녀를 향해 살며시 쏟아냈다. 아이, 참! 이게 뭐에요!
그의 말을 홀리듯 듣고 있던 메구미가 벌떡 일어나며 그를 향해 소리쳤다. 포근하게 그의 손을 타고 내려온 꽃잎들은 제 머리카락을 지나서 치마 위로 살며시 몸을 뉘였고, 차곡차곡 순서 없이 몸들을 겹쳤다. 쌓여가는 벚꽃 잎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히지카타를 향해 맑은 웃음을 내보였다. 것 봐요. 에도의 모두를 지키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나와서 가끔은 바람을 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그녀가 벌떡 일어나 그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치마에서 우수수 떨어져 내린 벚꽃 잎들이 얕은 봄바람에 휘날려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그 것도 그렇군. 그가 그녀 뒤로 펼쳐진 풍경을 자신의 눈에 세심히 그려 넣었다. 아이의 손을 잡고 나들이를 나온 부모들도, 나들이를 나온 것 같은 커플 한 쌍도 모두 행복함이 가득한 얼굴이다. 나름 어울리는 모양새가 아닌가. 자신의 시선의 끝을 따라가던 그녀도 그 커플을 발견 했는지 자신의 곁에 다가와 툭 하고 고갯짓을 했다. 저기 봐요, 저기 저 소녀. 되게 나무를 닮지 않았어요? 갈색 머릿결에, 나뭇잎을 닮은 핀을 꽂았잖아요. 지금 이 곳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예쁜 청춘이네요.
“누가 들으면 인생 좀 살아봤다 싶겠다. 아직 새파랗게 어린 녀석이.”
“젊다고 해주실래요? 누가 들으면 히지카타씨는 아주 늙은 사람인 줄 알겠네. 하긴, 소고랑 꽤 차이 나니까 늙은 게 사실이지만. 그렇게 티내실 필요는 없잖아요.”
이게 자꾸 까불지? 코웃음을 친 히지카타가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밀었다. 조그마한 녀석이 바락바락 말은 잘해요. 그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그가 제 어깨에 닿을 만한 벚꽃 가지의 꽃송이를 살며시 꺾어 들어, 그녀의 손바닥에 살며시 꽃송이를 내려주었다.
“봄에 오는 눈이 아직 제 구실을 안 하는 것 같아서. 아쉬운 사람이 먼저 손을 뻗을 수밖에 없잖냐. 지금 눈이 와주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너랑 같이 꽃구경을 나올 시간도 없을 텐데. 너무 서운해 하진 말고.”
물론 아직까지 봄에 오는 눈이 성가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말이다.
어쩜 사람이 그렇게 좋은 감정이 끝까지 못 갈까. 이봐요, 아저씨. 그렇게 낭만 없는 삶은 어떤 삶이에요? 재미 하나도 없겠어.
뭐, 나름 살만하지. 휘몰아치는 하루가 벅찰 정도로. 그래요?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휘몰아치는 하루가 벅차서 재미없는 사람한텐 항상 옆에 있어 줄 사람이 필요하겠다. 그죠?
메구미가 손에 놓긴 꽃봉오리를 제 귓가에 꽂으며 반대쪽 손으로 히지카타의 손을 다시 부여 잡았다. 내가 아니면 누가 데려간담! 기쁜 듯 재잘거리는 그녀의 목소리에 그가 살포시 미소 지었다. 어쩐지 올 한해는 이렇게 봄눈이 계속 내린다고 하여도 꽤나 버틸 만 할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