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액자식 꽃놀이 합작
미카제 아이x현비파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 왔다. 비파는 작업실에 있는 자신의 책상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어느새 길거리를 한가득 수놓은 분홍빛 솜사탕들이 맑게 빛을 내고 있었다. 한창 봄이 이어지는 이런 날에 조금만 거리를 나서면 항상 꽃놀이를 가려는 사람들로 붐비곤 했다. 그러고 보면 꽃놀이를 못간 지 벌써 몇 년은 되었다. 매년 가고 싶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맘때가 되면 항상 일과 마감에 치여서 기껏 세워놓은 계획도 물거품이 되곤 했다.
집 근처 공원에 피어있는 벚나무와 그 아래 자리 잡은 일가족을 보며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다. 마감에 치이는 일 없이 저렇게 여유롭게 꽃놀이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 대상이었다. 사실 비파도 가려고 하면 못갈 것도 없었다. 급한 마감은 얼추 다 끝내놓았고, 이제 남은 건 기한이 넉넉한 마감 하나뿐이었다. 조금 시간이나 일정을 조정하면 하루 정도는 쉬어도 무난하게 맞출 수 있었다. 왜 나가지 않느냐 하면, 혼자보단 연인과 함께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이라면 혼자 나가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아름다운 광경이나 즐거운 무언가를 발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연인이었다.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그와 함께 공유하고 싶은 욕심이었다.
비파는 창틀 위에 팔을 걸치고 입을 비죽 내밀었다. 오늘 연인은 늦게까지 스케줄이 있었다. 행여나 조금 일찍 끝나게 되더라도 저녁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꽃놀이~."
가고 싶다고 외치려는 때에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화들짝 놀라서 바로 몸을 일으키고 현관을 보았다. 푸른 물결이 한 번 일렁이고 그 사이로 사랑하는 얼굴이 보였다. 비파가 맑게 웃었다.
"벌써 스케줄 끝났어요?"
"오프를 잡아뒀어."
"일부러 그런 거예요?"
오늘 무슨 약속이라도 있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저번에 그가 업데이트해둔 스케줄에는 그런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에 의문이 쌓였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그럼 오늘 꽃놀이는 물 건너갔구나 싶어 낙심했다. 그런 기색을 전혀 티 내지 않고, 비파는 다음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아이는 약간 상기된 얼굴로 똑바로 눈을 바라보았다.
"얼른 준비하도록 해."
"약속 있는 거 아니었어요?"
"응, 비파랑 같이 가기로 했어."
"내가 가도 되는 자리예요?"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꽃놀이를 가자는 약속이니까."
전혀 예상하지 못했으면서도, 방금 전까지 굉장히 기대하고 있던 제안이었다. 비파는 당장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두 사람은 곧 택시를 잡아탔다. 아이가 말을 꺼낸 장소는 꽃놀이하기에 좋다고 유명한 장소였다. 사람이 꽤 많을 것 같아서 혹시라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랐다. 물론 평소처럼 모자와 선글라스로 잘 가려놓은 상태였지만, 그래도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목도리 같은 거라도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괜찮아. 그런 축제 장소에선 사람들의 시선은 노점상이나 흥미로운 것들에 가있고, 옆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잘 가지 않는 걸로 데이터에 나와 있어."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요?"
"혹시나 하는 상황을 사전에 대비해두기 위해서 나름 준비해왔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요?"
고개를 기울이는 비파에게 자기 손에 든 가방을 들어보였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스카프가 들어있었다. 웬 스카프인지 묻자, 스태프에게서 받은 거라고 했다. 보아하니 오늘 입은 옷과도 잘 어울릴 것 같은 게 감각이 좋은 스태프 같았다. 이걸로 걱정 덜었다고 얘기하며 웃었다.
"누구랑 만나기로 한 거예요?"
"레이지랑 란마루, 카뮤, 후배들이랑 하루카, 토모치카까지."
"사무소 멤버들 대거 출동이네요. 그런 자리에 가도 되겠어요?"
"꽃놀이 즐기는 것뿐이고, 연락만 해두면 굳이 참석하지는 않아도 되니까."
"그럼 왜 굳이 가려고 생각했어요?"
"비밀."
장난기 어린 얼굴로 웃으며 대답하는 그를 보았다. 전에도 몇 번 이런 적이 있는데, 그 때마다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그 나름대로 준비를 하곤 했다. 그것이 깜짝 생일 파티일 때도 있고, 촬영장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풍경일 때도 있다. 카뮤와 함께 발견한 맛있는 디저트 가게, 레이지, 란마루와 함께 갔던 음식점, 마스터코스 후배들인 쇼, 나츠키와 함께 구경했던 악기점, 때로는 스스로 정보 수집을 위해 탐색하다가 발견한 장소이기도 했다. 이번에는 꽃놀이 장소에 무언가 보여주고 싶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꽃놀이라고 하면 만개한 벚나무 아래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꽃을 즐기는 것이 전부일 텐데, 그곳에 대체 무엇이 있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나지 않았다. 원래부터 이런 행사가 벌어지는 장소 안에 있는 것들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택시가 꽃놀이 장소에 가까워질수록 차가 많아졌기에, 적당한 곳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로 했다. 물론 차에서 내리기 전에 스카프를 목에 둘렀다. 손을 맞잡고 꽃놀이 장소까지 삼십여 분을 걸었다. 점점 사람들이 보였다. 그 안에는 이 작은 축제를 즐기기 위해 유카타를 입은 사람들도 몇몇 보였다. 사람들을 구경하며 주변을 살피는데, 아이가 몸을 숙여 얼굴을 가까이 했다.
"비파."
"왜 그래요?"
"잠깐만 이쪽으로."
영문을 모른 채 이끄는 대로 따라갔더니, 그곳에는 솜사탕을 파는 노점상이 있었다. 하얀 설탕이 여러 가지 색깔의 식용 색소를 만나서 노랗고 파랗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가 다시 옆을 보았다. 솜사탕이 돌아가는 기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설탕이 솜사탕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비파는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솜사탕이 먹고 싶어서 온 것이 틀림없었다. 이럴 때는 꼭 그 나이 또래 아이들 같은 느낌이다.
“사줄까요?”
“아냐, 내가 살게. 비파도 같이 먹자.”
잠시 후, 비파에게 분홍색 솜사탕을 쥐어준 아이가 자기 손에 있는 파란색 솜사탕을 한입 베어 물었다. 그걸 가만히 보다가 비파도 입에 살짝 머금었다. 사르르 녹아내리는 달달한 설탕의 감촉에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
“솜사탕 정말 오랜만이네요.”
“오랜만이면 몇 년 정도 된 거야?”
“3년 됐을 거예요. 일이 엄청 바빠지기 전에 한 번 축제에 갔었거든요. 그 때 친구들이랑 기념으로 사먹었어요.”
“그럼 나랑 만나고서는 처음인 거네.”
“그렇게 되겠죠?”
별 생각 없이 대답하고 고개를 돌리자, 그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 기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저렇게 웃고 있는 것만으로 됐다며 비파는 다시 솜사탕을 입에 물었다.
꽃놀이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익숙한 얼굴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안쪽 구석, 사람이 거의 없는 자리를 잡은 그들은 이미 돗자리를 펴고 모여앉아서 음료 같은 것들을 마시고 있었다. 비파는 그 인원들을 둘러보다가 후배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두 사람을 가장 먼저 발견한 레이지가 손에 들고 있던 맥주를 들어올렸다.
“와아, 아이아이, 비비쨩! 빨리 왔네? 촬영이 늦게 끝났다고 하지 않았어?”
“차가 예상보다 덜 막혔어.”
“그랬구나~. 아, 두 사람, 모두 여기 앉아.”
자기 옆 자리를 팡팡 두드리며 싱글벙글 웃는 그를 가볍게 무시하고 아이가 말했다.
“란마루, 후배들은? 스케줄은 벌써 끝났을 시간인데.”
옆에서 레이지가 무시하는 거냐며 너무하다는 둥 투덜거렸다. 그 옆에 앉아서 코토부키 도시락을 먹고 있던 란마루가 시끄럽다고 일갈을 한 후, 대답했다.
“아, 그 녀석들은 먹을 것 좀 사가지고 오겠다고 가던데.”
“미리 사오지 않았어요? 보통 꽃놀이 할 때는 먹을 걸 가져오잖아요?”
“으응, 그게 란란이랑 뮤쨩이 거의 다 먹어버려서 남은 게 거의 없었거든.”
“흥, 스위츠를 적게 가져온 그 녀석들이 잘못한 거다.”
이미 손에 잡은 푸딩 하나를 반 정도 비운 채로 이야기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눈을 깜박이며 푸딩 그릇을 가만히 보다가 모른 척 하기로 했다. 비파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도무지 이 자리에 앉을 것 같지도 않은데, 대체 어디를 가려고 하는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궁금증만 늘어갔다.
멤버들과 몇 마디 더 나누고 인사를 하더니 그대로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걸어가며, 아이와 마주 잡은 손을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벚나무 아래 모인 가족, 친구, 연인들이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단지 꽃 하나 잔뜩 피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웃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이 아닐까. 마술사나 개그맨에게도 어려운 일임에 분명했다. 덩달아 비파의 입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러다 문득 사람들 사이에 조금 특이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보였다. 짙은 녹색의 옷을 몸에 걸치고 쇼와시대 학생모 같은 느낌의 모자도 쓴 남녀였다. 큰 키와 약간 체격이 있는 남자와 검은 머리를 양갈래로 묶은 귀여운 인상의 여자가 나란히 서서 벚나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비파는 그 두 사람을 유심히 보다가 다시 웃음 지었다.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우고 벚꽃을 가리키며 잔뜩 이야기를 하는 여자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시선이 무척이나 따스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어째서인지 그 색이며 눈매까지 닮은 곳은 하나 없는 남자의 눈과 아이의 바다 빛깔 눈동자가 겹쳐졌다. 어쩌면 아이도 자신을 볼 때 저런 눈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평소에 25cm라는 상당한 키 차이나 여러 이유로 눈을 마주하는 일이 많지 않았고, 항상 아이가 고개를 숙여서 시선을 맞춰주었기 때문이었다. 가만히 두 사람을 보다가 아이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앞을 똑바로 바라보는 저 눈에는 어떤 감정이 담기게 되었을까. 아이를 부르자, 시선이 밑으로 내려왔다. 변함없이 푸르고 맑은 눈동자가 비파를 비추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는 듯 살짝 고개를 기울이는 그에게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디 가려는 거예요?”
“비밀이야.”
“조금만 힌트를 줘도 되잖아요?”
“안 돼. 여기까지 와버렸는데 알려주면 결정적인 힌트가 되어버려.”
“거의 다 온 거예요?”
“응. 아, 비파. 눈 좀 감고 있을래?”
“좋아요. 얼마나요?”
“5분이면 돼.”
눈을 감은 채 계속 아직 뜨지 말라고 하는 말에 대답하며, 그의 손에 이끌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 제법 시간이 흐른 것 같이 느껴지는데 떠도 된다는 말이 없어서 눈두덩이 간지러웠다.
“아직 멀었나요?”
“이제 떠도 괜찮아.”
눈을 뜨자마자 보인 것은 거대한 나무였다. 몸통만 해도 사람이 대여섯 명은 손을 맞잡고 감싸야만 둘러쌀 수 있을 정도로 두꺼웠고, 그 아래로 뻗은 뿌리는 땅을 뚫고 나와 굵은 제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가지는 하늘을 향해 힘차게 돋아나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마다 벚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그 웅장한 모습에 넋을 놓은 비파가 눈을 떼지 못하자, 아이가 조심스럽게 그와 시선을 맞췄다.
“어때? 마음에 들어?”
“……아이.”
“응, 말해봐.”
“굉장해요! 이렇게 커다란 벚나무도 있었군요! 여긴 어떻게 알았어요?”
“오늘 약속 장소가 여기라는 말을 듣고 조사하던 와중에 알게 됐어. 사람들 사이에 유명한 지 데이터가 굉장히 많았거든. 감상이나 연구 자료 같은 것들.”
“그렇군요. 확실히 그럴 만도 하네요. 이 정도면 엄청 오랜 세월을 살아왔겠어요.”
잔뜩 신이 나서 어린아이처럼 떠들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거의 볼 수 없는 흥분 어린 모습을 보며 아이도 웃었다. 역시 데려오길 잘 했다며 아이는 맞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봄날의 따스한 온기를 머금은 손의 감촉이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것들을 모두 데이터화시키며, 아이는 비파를 불렀다. 왜 그러느냐며 돌아보는 얼굴에는 기쁨으로 생기가 가득했다. 그 모습마저 사랑스러웠는지 그는 허리를 살짝 숙여서 입술에 입을 맞췄다. 놀라서 크게 벌어진 눈동자와 도화지에 물감이 번지듯 붉게 물들어가는 얼굴을 보며 말했다.
“많이 좋아해.”
“아이도 참, 뭘 새삼스레. ……저도 많이 좋아해요.”
부끄러움을 가득 담아 말을 돌리다가, 눈꼬리를 아래로 휘며 비파가 마주 웃었다. 이 광경을 보여줘서 고맙다는 말이 바람결을 타고 흘러갔다.
